믿음이 주께로부터 옴

by hun

집을 구하지 못하니 일이 잘 잡히지 않았다. 역시 의식주가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인가보다. 들어가 쉴 곳이 없으니 항상 신경이 그쪽으로 쓰였다. (머리 둘 곳이 없으셨다는 주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노숙자도.)

그래도 지금 내게 있어야 할 것이고, 있어야 할 것을 예비하실 하나님을 믿고 무작정 왔다. 그러나 시간이 갈 수록 좋은 조건의 집이 보이질 않으니 초조해졌다. 몇 군데 돌아보았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괜찮은 집을 하나 보았다. 그것을 보고 나니 ‘아, 좋은 집도 있구나. 얻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이틀 후, 더 이상 좋은 집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보아 두었던 집이 나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밀려오기 시작했다.

믿음은 어디 간 걸까.

믿음은 간 곳 없고, 나의 탐심만 남아 있었다. 그러고 보면, 몇 일 전 마음이 놓였던 것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 때문이기 보다는 확률에 의한 안도감이었다. 좋은 집을 얻을 가능성이 높은가 아닌가, 높으면 마음이 놓이는 그런 지극히 육에 속한 마음. 그러니 확률이 떨어지자 마음이 다시 불안한 것이다.

도대체 내 안에 믿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분의 통치에 대한 믿음이 어디 갔단 말인가. 내가 원하는 것이든 아니든, 주께서 예비하신 그 집은 있을 터이요, 거기로 간다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믿음은 어디로 가고 탐심만 남은 것인지.. (이래서 탐심은 우상 숭배라 말씀하셨나보다.)

죽어가는 자식을 살리기 위해 헤롯 안디바스 아래의 관리는 갈릴리에 계신 예수님을 찾아 왔다. 그는 예수님에 대해 들어보기는 하였겠지만 그분이 과연 어떤 분인가에 대한 인식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인식이 있다는, 최소한 니고데모에게서 보이는 예수님에 대한 자기의 어떠한 인식의 고백도 없다. 오직 “기적을 베푸사 자식을 살려 주십시오”라는 부탁 뿐이었다.

예수님은 그런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기적을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겠구나” 즉, “이 사람아, 너는 기적을 바라고 왔지만 나는 기적을 목적으로 이적을 행하지 않는다. 그것은 믿음이라는 것을 위해, 내가 누구인가를 알리기 위해 수단적으로 사용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너는 오직 나의 어떤 능력, 그것을 이용하려고만 하고 있지, 내가 누구인지 알려고 하는 생각은 없구나. 기적을 네게 보여주지 않고는 도무지 그 이상의 무엇을 생각지 않겠구나.” 말씀하신 것이다.

일순간이지만, 관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자신을 살피게 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저회적인 상태를 보았을 것이다. 이것은 나중 주님께서 “네 자식이 나았다. 가거라.” 하신 말씀에 두 말 없이 돌아간 그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그는 그 순간 자신을 돌아본 것이다. 주님께서 그를 책망하시면서 믿음의 씨를 심으신 것이다. 결국 자신은 예수님 앞에 그저 빌 수 밖에 없고, 예수님의 자비를 구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의 처분만 바란다는 위치로 가게 되었다. 그는 예수님께 “제 자식이 죽게 되었습니다!” 하고 불쌍히 여기심을 구하게 된다.

주님의 은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주님은 그 관료에게 믿음의 씨를 심으시고, 이제 그 믿음이 발휘 되게 하신다. 어떻게 발휘 되는가: 그것은 발휘할 여건을 주시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 관료의 요구처럼 그의 집에 가지 않으시고 “네 자식이 나았으니 가거라” 하셨다. 관료에게 믿고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계속 구할 것인가를 결단할 상황을 만들어 주신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주님은 그에게 믿음을 주신 것이다. 과연 관리는 예수님 앞에 자신을 다 내려놓고 ‘당신이 하시는 말씀을 제가 믿겠습니다’ 하는 심정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그는 자기 집 하인을 만났고, 주께서 말씀하신 그 시에 자녀가 나았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와 온 가정이 믿게 되었다.

집이 금방 구해지지 않으면서, 나의 저회적인 상태는 드러났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렇게 기다리게 하심으로, 당장 예비하신 것을 천천히 찾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발휘될 여지를 주시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은혜다. 내가 원하는 집인가 아닌가를 항상 볼려고 하는 위치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이끄시고자 하시는 방향이 어디일까를 분별하는 위치로 옮기시는 것이다.

결국 주께서는 모든 것을 예비하시는 분이심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보이셨다. 주의 사랑을 입을 자격 없는 종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마땅히 우리의 전부를 드려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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