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예(學藝, liberal arts)교육의 필요성

by hun

미국에 세인트 존스 칼리지(St. John’s College)라는 대학이 있다. 소위 학예대학(liberal arts college) 중 하나이다 — 즉 특정 전공에 집중하기 보다는 인문학과 과학의 기본적인 소양을 두루 갖추는데 집중하는 학교이다. 1696 년에 설립 된, 역사가 오랜 학교이다. 1936 년, 당시 미국 대공황의 영향으로 이 학교가 재정 파탄에 이르렀다. 학교를 살리기 위하여 새 학장과 총장으로 스트링펠로 바아(Stringfellow Barr)와 스캇 뷰캐넌(Scott Buchanan)을 영입하면서 교육과정을 전면 재구성하였다. 그 때 이 사람들이 구성하여 지금까지 시행 되는 것이 ‘위대한 고전들'(Great Books) 과정이다.

‘위대한 고전’ 과정은 그 당시 급변하던 대학 교육 과정의 풍조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으서, 철학, 신학, 수학, 과학, 음악, 문학 등의 영역에 기여한 서구 문명의 중요한 고전들을 읽고 토의하는 것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시험과 학점 보다는 배움에 중점을 둔는 학풍이 그 가운데 있다.

이처럼 특정 세부 전공의 습득에 앞서 인문 과학 전반에 걸쳐 깊이 있는 사상가들을 (책을 통해) 만나고 교양과 식견을 쌓는 것의 중요성은, 새로운 기계가 나오면 옛것을 버리는 데 빠른 현대인들에게 다시 강조될 필요가 있다. 작고하신 김영무 교수님께서 ‘우물을 깊게 파려면 처음에는 넓게 파야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에 남는다.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라는 말을 아니 들어본 사람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 CLA (College Learning Assessment) 점수를 분석한 결과 인문학 또는 수학을 전공한 학생들이 공대 학생들 보다 비판적 사고 및 분석력에서 평균적으로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1]

애플의 철학에 대해 말하는 스티브 잡스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애플의 뼈속에 각인 되어 있습니다. 학예와 융합된, 인문학과 융합된 기술이야말로 흥이 절로 나오는 결과를 가져다 줍니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애플의 철학에 대해 힘있게 강조한 부분이다.

대학 교육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였지만, 이것은 결코 대학 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를 막론하여 교육이라는, 배움이라는 것 전체를 접근할 때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다.

특히 조국 사회의 교육 풍토를 생각할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교육열이 강하다고 하나 차라리 교육결과열이 강하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니 ‘정답이 무엇이냐’, ‘남들보다 좋은 결과 얻자’는 식의 노력이 주를 이룬다.

학교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학예교육이 강조 되어야 한다. 사교육이 문제라고 하나, 학교 또는 가정에서 학예교육을 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학예교육에 중점을 두는 사교육을 찾아 나서는 것에 전혀 반대할 의사가 없다. (그런 사교육을 찾을 수나 있다면 행운일테다.) 하지만 학예교육은 가정에 자리 잡았을 때 가장 큰 효과와 열매를 기대할 수 있음을 생각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런 저런 학원 또는 시설에 보내느라 돈을 쓰고, 또 그 돈을 벌기 위해 밖으로 다니기 보다는, 아이와 함께 고전을 읽고 토의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유익하리라.

바라기는 한국에서도 세인트 존스 칼리지 같은 교육 과정을 갖춘 학교들이 나오고, 또 그런 교육이 강조 되는 풍토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개혁주의적 학교들이 설립되기를 바라는 나로서는 특히 개혁주의적 교육자들이 학예교육의 중요성을 마음에 두고 학교 설립을 고려했으면 좋겠다. 참으로 신학과 철학, 수학, 과학, 문학, 음악, 미술 등에 두루 교양과 식견을 갖추어 궁극적으로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그 분의 영광을 더욱 섬세하고 깊고 호방하게 맛보고 표현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주석

[1] R. Arum, J. Roksa, Academically Adrift,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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